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이 작품과 만났다] 술을 다시 보다…‘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정지아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에서려나… 뭔가 습득되는 것이 있어야 책을 읽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자잘한 신변잡기를 써 놓은 수필집은 피천득 님의 ‘인연’ 만큼의 아름다운 문장이 아닐 바에는 손에 들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세 여자’의 조선희 작가가 서울의 낙산 성벽 꼭대기에서 운영하는 카페 ‘책 읽는 고양이’에서의 북토크 참관을 위해 지난 12월에 읽게 된 한 권의 책이 수필에 대한 나의 편견을 불식시켜주었으니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였다.     지리산 자락을 품은 땅 ‘구례’에서 태어나, 60에 가까운 지금까지 줄곧 산 아래 자연을 이웃 삼아 살아온 작가는 우리 역사의 아픈 뒤안길을 몸소 살아낸 친아버지의 이념적 이력으로 하여, 태생부터 빨치산의 딸이라는 운명적인 딱지가 붙혀지면서, 청년이 될 때까지 오랜 세월 남몰래 숨어 산 아픔이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믿지 못할 사람 사이의 일을 수없이 겪으면서, 곁에 사람 두는 일에 선을 긋는 일을 인간관계의 본령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수필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어떻게든 작가와 사귀려고 애를 써대는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그런 배경을 지닌 사람이 없어서인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술에 곁들여 맛깔나게 빚어내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밑동이 샐지도 몰라…’라던 일본 선승의 하이쿠가 떠오를 만큼, 전체 수필이 모두, 시바스 리갈과 조니 워커 블루, 보드카와 소주를 기본양념으로 하여 쓰여있다. 내가 이런 술 냄새 진동하는 수필에 감동을 한다고? 믿기지 않을 따름이었다.   제일 강렬하게 남아있는 에피소드는 ‘먹이사슬로부터 해방된 초원의 단 하루’. 아프리카 초원의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사과가 자연적으로 발효되어 사과주가 되었고, 그것을 주워 먹은 동물들, 원숭이나 사자가 각자의 위치를 잊어버리고 거나하게 취해 서로 엉켜 나뒹구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를 인용하여 쓴 수필 한 꼭지. 술의 효력 최대치를 더는 맛깔날 수 없게 잘 표현해놓았다.     술을 매개로 하여 쓰였지만, 책 전체에서, 사람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는 관계, 또 다른 차원의 포용이 뿜어져 나오면서, 근래 보기 드물었던 진짜, 진심, 본질 이런 단어가 뇌리를 감돌던 책이었다.   니체가 말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실재성과 정체성에 도달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의 극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한권을 읽으며, 술 대신 그 기쁨에 취해보시기를 권해드린다. 세상의 모든 훌륭한 책이 그러하듯, 첫 페이지부터 엇! 하는 놀라움을 안겨드릴 것이다.     작가가 직접 책에 관해 이야기하던 북토크 때의 모습에서는, 모름지기 작가라면, 기본 소양에 있어서부터 상대방을 포옹하는 그릇이 남달라야 할까. 어느 만큼의 아픔과 극복과 다독의 경지가 저 정도의 책을 써낼 수 있게 할까. 저 두둑한 유머의 경지는 또한 어디에서 오는 걸까. 많은 생각과 삶에 대한 자극이 일게 하였다.     정지아 작가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시대의 온기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물한다는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꼭 마저 읽어보고 싶어졌다.   어두운 운명의 끝을 부여잡고 음지로 떨어지는 대신에, 보란 듯이 세상의 배에 올라 신나게 항해하는 작가의 비범함, 고요함, 해학, 삶의 두께!! 낯가림이 심한 작가가 사는 구례의 산자락 아랫마을에 오늘도 살뜰하게 나무와 풀과 바람과 인적이 함께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영숙 / 시인이 작품과 만났다 정지아 정지아 작가 산자락 아랫마을 아프리카 초원

2024-01-05

[아름다운 우리말] 다르다의 세계

아프리카에 관한 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초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초식 동물이 살고 있지만 서로 먹이 때문에 다투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서로 좋아하는 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단순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저는 이 내용을 읽고 다르다는 게 좋은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하고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기에 다툼도 없습니다. 다르다는 말은 차별의 어휘가 아닙니다. 다르다는 말은 조화를 기다리는 말입니다. 평화의 말이죠.   ‘다르다’라는 말과 ‘닮다’라는 말은 전혀 의미가 달라 보입니다. ‘같다’와 ‘비슷하다’도 유의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단어의 뜻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다르다는 말과 닮다는 말은 서로 어원이 같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사실 닮다는 말을 생각해 보면 똑같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같은 점을 강조한 말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슷하다와같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슷한 게 같은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것은 어딘가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닮다는 말은 느낌이 좋은 편입니다. 예를 들어 자식은 부모를 닮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은 금방 부모·자식임을 알아차립니다. 걸음걸이도 목소리도 식성도 닮습니다. 종종 자식은 부모를 닮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이 역시 부모도 옛날에 자신의 부모들께 했던 이야기입니다. 종종 부모도 자식에게 누구를 닮아서 저 모양이냐고 말하지만 정답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정답은 부모죠.   비슷하다는 좋은 의미인 경우도 있지만 주로는 부정적인 느낌이 많습니다. 비슷하다는 말은 빗나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빗나가다, 빗금, 비탈, 빗맞다 등의 ‘빗’은 비슷하다와 어원이 같습니다. 전부 다 정확하지 않고 잘못 나가고 기울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비슷한 물건은 가짜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짜에게 비슷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것은 다 가짜라는 글귀도 있는 듯합니다.   한편 다르다와 관련이 있는 말로는 ‘어울리다’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 똑같다면 어울릴 필요도 없을지 모릅니다. 획일적이지요. 그러나 서로 다르다면 어울리는 짝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옷도 어울리는 게 보기 좋습니다. 반바지에 검은 긴 양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슬리퍼에 양말도 마찬가지지요. 어울리는 것에서는 멋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어울리는 일이 많습니다. 나와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재미있는 일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어울리다라는 단어에는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잘 사귀고 지낸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참 좋은 표현입니다. 어울린다는 말은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의미가 넓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는 서로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서로 어울려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게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우리말에서는 어울려 논다고 한 것입니다. 저는 어우러지다는 표현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어울리는 사람끼리 함께 어우러져 어울려 다니는 것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이지만 서로 닮아가고, 서로 닮은 사람끼리 어울리고, 어울리는 사람끼리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평화롭고 즐거운 세상입니다. 다툼이 없는 세상이지요. 당연히 차별은 없습니다. 달라서 기쁜 세상이고, 다르기에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세상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세계 아프리카 초원 요즘 친구들 초식 동물

2022-07-31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